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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나는 같은 포물선을 그렸다.

 

올해 초 엄마와 나는 긴 대화를 했다. 열어 놓은 문틈으로 아빠가 듣지 못하도록, 낮은 텔레비전 소리를 배경음 삼아 도란도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단한 이주와 아이 키우기의 힘듦, 남자의 사회와 겹쳐져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 했던 순간들에 대해. 거기에는 그 누구도 적으로 두지 않고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애씀과 위로, 삶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40여 년 만에 가능해진 엄마와의 대화로부터 받은 힘은 이 책과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확고하게 했다.

공평하지 않은 삶은, 혹은 더 잘 살아내고자 하는 욕망은 끊임없이 우리를 '이주'하게 한다. 나의 작업 가운데 늘 언급하는 '이주'는 물리적인 이사뿐 아니라, 정신적 성숙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서도 크고 작은 이주를 겪으며 성장하는 두 여성, '선'과 '여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치 이야기를 나누듯 교차 편집된 두 여성의 작은 역사는 메아리처럼 반복되고 파생되어 각자만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린다. 그렇게 그녀들의 삶은 한국 사회의 그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공간들을 스쳐 지나간다. 80년대 호황을 누렸던 한국의 건설 경기를 배경으로 대가족이 살았던 한옥과 붉은 벽돌로 지은 단독주택, 그리고 다세대주택과 아파트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나 역시 '선'처럼 작은 주택에서 유년을 보내고 난개발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서울 근교의 도시에서 가족을 이루며 산다. 작은 창을 통해 푸른 산이 붉은 흙덩어리가 되었다가, 고공 크레인이 올라오며 마침내 회색 콘크리트로 다시 태어나는 광경을 매일 지켜보고 있다. 매일 보는 광경이 흐르는 시간과 변화하는 인간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탄생한 셈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의 인간의 공간과 겹쳐진 여성의 역사를 내 언어와 방식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다소 파편화된 글과 이미지라 할지라도 'Writing them will make them more important. 계속 써야 중요해지는 것이다'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를 믿으며 말이다. 같은 장소 주변부를 맴돌며 시기를 달리해 촬영한 이미지들과 함께 글의 16편 중 7편은 육화되어 '그녀'의 목소리를 입은 채 사운드 내레이션이 되었다. 이를 작은 산의 형태를 띤 도자 구조물 안에 안착시켰다. 또한, 작업의 주요 부분을 책의 형태로 묶음으로써 구술이 아닌 기술이 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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