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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투영된 내면성에 대한 탐색

​허아영, 한기숙 갤러리 디렉트

 

 

공간에 종속된다는 것은 머물 수 있는 어딘가가 보장되어 있다는 것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필수조건일 것이다. 특히 주거공간은 누군가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해석되는 자본의 상징이기도 하다. 삶의 질과 연결되는 이 공간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몇 번이고 이동 되며, 그 이동이 반복될 동안 주거 공간 역시 헐어지고 세워짐이 교차된다. 오랜 기간 삶을 함께 한 공간은 기억이 겹겹이 축적되어있어 낡은 벽지, 벗겨진 페인트, 창틀의 프레임에 맞게 보여 지는 풍경까지 추억의 세포들처럼 기억이 엉겨 붙은 장소이다. 삶의 일부였던 공간이 허물어 질 때 느끼는 아련함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상실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경이 건네는 공간은 이러한 아련함을 되살리고 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곧 허물어질 그 곳을 담담히 향하고 있으나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기억의 고향을 잃어버린 누군가의 마음과 연결되고 있다. 억지스럽게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사진을 마주하면 내면에 간직된 각자의 고유한 흔적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미지가 공간모형으로 재구성되면서 그 집중력을 더 자극시키고 있다. 인간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공허함은 작가의 구성방식에 의해 또렷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의식하고 있지 않다가도 특정 음악이나 냄새만으로 과거의 추억이 불쑥 떠오르듯 민경의 이미지 역시 내면에 고착화된 기억을 반복 재생시킨다. 대상을 통한 지각은 보는 이의 기억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사진 속 대상을 만나는 관자들의 기억도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민경의 비워진 공간에서는 서로 상이한 기억의 형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공간속에 투영된 사적인 삶의 기억을 만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가시적인 공간이 유실되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 역시 변화되어 왔음을 네모난 집 세모난 집 네모난 집(2012), 단단한 집(2012)이란 나레이션 작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외적인 변화보다 내면의 변화과정이 오늘의 자아를 형성하였듯 민경의 작업은 공간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바라보게 한다. 어느 곳에 뿌리내려 에너지를 공급받고, 어디를 바라보며 삶을 이어왔는지, 주어진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그 중심을 찾아다녔던 기억을 만나게 된다. 거주와 이동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은 심리적인 안식처가 되는 공간을 각자의 내면에 스스로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 시대의 물리적인 공간은 더 이상 따뜻한 고향의 모습으로 기다려주지 않는 듯하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는 표류자로 내면의 공간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민경은 기억의 저장고에서 부피는 크지 않으나 밀도만큼은 진하게 내제된 그것을 끄집어내고 있다.

사진 속의 집들은 어느 시대 유행했었던 아주 번듯하게 세워졌을 다가구 주택들이다. 늘 그렇듯 건축은 시대의 부속물로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민경의 작업은 공간에 비추어 이러한 시대를 읽어내고 있다. 비워진 공간은 과거를 환기시키면서도 새롭게 구축될 무엇인가를 예측하기도 한다. 현 시대가 추구하는 모습으로 세워질 건물들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노라 말하게 될 것이다. 높이 치솟아 오른 오늘날의 주거공간은 누군가의 기억의 고향이 되어주다, 시간이 흐른 어느 시대에 또다시 인간의 부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철거되고 허물어지게 됨을 유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낡은 것을 허무는 권력은 안식할 곳을 찾아야하는 이들에겐 끊임없이 또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돌아오게 된다. 보금자리를 위한 개발과 욕망이 머물 곳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마주하는 우리의 내면에도 그 양면성이 늘 존재하지 않는가. 철거되어 사라지는 공간이 기억을 잃어버리는 듯 아쉬워 붙잡고 싶으나, 이제는 불편해진 그 곳에 계속해서 종속되고 싶지는 않은 이중적인 내면과도 마주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낡은 것들은 한 장의 사진처럼 그저 삶의 한 역사로만 남아주기를 현 시대는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간을 탐구하는 민경의 작업은 그 장소의 범주가 확장되고 있다. 이는 공간을 대하는 작가의 담론 역시 점차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 우리의 기억에 담긴 그 불확실한 감정들을 민경은 보다 선명하게 대면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안내하고 있다. 협소했던 기억의 잔재가 새로운 의식을 개척하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짐작하면서 작가의 다음 도약이 기대된다.

작가노트

<떠다니는 섬 The Floating Islet>

 빈 집/ 비워진 공간/ 버려진 장소에 대하여

 민경

 

 

몇 년 동안 대구와 서울을 오갈 때 마다 미묘한 감정이 들곤 했다.

대구로 들어서며 톨게이트를 빠져나올 때마다 ‘돌아왔다’란 안도감이 들지만 동시에 내가 이곳에 살지 않으므로 ‘돌아 올’ 장소가 없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는 유년기를 보내고 내 청년기의 시작을 기억하고 있는 익숙한 풍경들이 최근의 생겨난 몇몇의 건물들과 거리의 변화에 의해 비현실적으로 변해감으로 때문이기도 하고 친정이 그간 이사를 거듭하며 오래 살던 곳에서 터를 옮겨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듯 대구에서의 몇 일은 표피에 스미는 이질감을 떨치고 집으로 가야지, 마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늘 그런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서울로의 입성을 실감나게 하는 한남대교 주변의 지루한 정체와 함께 야트막한 산에 블록처럼 쌓여있는 재개발 지역의 붉은색 주택들의 풍경은 도리어 생경한 마음을 부추긴다.

 

작년 인천 아트 플랫폼에 입주하게 되면서 일산과 맞닿은 인천의 서구에서 all the way down, 즉 인천을 가로질러 내려가 동인천의 구도심에 자리한 작업실로 출근하곤 했다. 50여분을 운전하는 동안 인천지역에서 몇 년되지 않은 아파트 촌에서 출발한 나는 인구가 제법 되는 도시라면 가지고 있을 법한 모든 모습을 대면 할 수 있었다.

신도시라 명칭 되지만 낡아가기 시작하는 아파트 촌, 몇 층인지 알 수도 없는 하늘과 맞닿은, 그야말로 철저한 계획 아래 지어진 신도시, 기념비처럼 세워지고 있는 지상철의 역, 곧추세워진 남근과 같은, 층수를 육안으로 셀 수도 없는 고층의 아파트들과 파헤쳐진 붉은 땅, 비워진 연립주택들과 주택들, 도심의 중심부에서 밀려나와 땅값이 싼 곳에 자리잡은 중소공장, 오래된 항구와 목재단지, 대기업의 공업단지, 이미 낡아빠져 지평선과 그 어깨를 나란히 한 주택 촌, 그리고 이전의 아우라를 잃어버린 구도심.

 

특히나 오래된 주택단지의 풍경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유년기의 집들과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더 낡고, 더 가난하고, 더 황폐해진 풍경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면 견고해 보이는 바닥과 벽이 부서져 가고 있고,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던 공간은 맨 살을 드러내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러한 풍경들은 유년기의 집을 잃어버린 나의 마음을 자극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둥지를 만들어야 하는 어미 새와 같은 절실함을 더 일깨워주곤 했다. 이런 집에서 삶을 꾸려야지 하고 먹은 마음 앞에서 그 집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물리적인 집이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삶을 아무리 열심히 꾸려갔다고 해도 때가 되면 더러운 흔적만을 남기고 비워야 한다. 단단하고확고한 삶의 형태는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

그 행위에는 여러 다수의 의지가 개입된다. ‘비워진’이라는 수동형이 맞춤법에 맞지 않을지라도 ‘비워진다’라는 표현이 들어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몇 번이고 재현된다. 

한번 비워지고, 버려지고 나면 그곳을 기억하고 있던 누군가가 찾더라도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반짝이는 타일과 흙 냄새가 나지 않는 나무들로 치장되어 있을 것이다. 역시 그것들도 낡아가면 또 한번 버려지고 또 다시 치장되는 형식으로 시간을 흐르고 인간 삶은 굴러갈 것이다.

 

3년여의 시간 동안 한남동의 재개발 지역과 인천 가정동 지역에서 이미지 채집이 이루어졌다.

지속적이고 끈질긴 시간은 아니였다. 아이가 생기기전에 시작된 촬영은 젖먹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품에서 나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잊지 않고 계절마다 이미지를 점검했고, 집중적인 촬영이 몇 번 이루어지고 나서야 이미지의 선택이 이루어졌다. 한남동과 가정동을 구분하는 것을 무의미했다. 구분하려 시도했지만(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어 매우 빠르게 진척된 재개발 지역과 인구의 유입이 많지 않아 재개발이 더디게 진행되어 특정 시간 동안 멈춰진 정도였다.) 구분이 무의미 하지 않나 했다. 이미지를 정리하면서 나는 이제는 없어져 버린 대구 욱수동의 내 유년의 집을 떠올렸고, 내가 그리울 때 그 집을 찾았지만 아파트가 서 있었노라던 친구의 말을 떠올랐다.

사진을 오리고 형상을 만들어 연출하여 사진을 찍는 작업을 시작으로 채집했던 여러 풍경을 조합해 보고 그것을 촬영한 작업과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일종의 편지 형식, 혹은 나레이션 형식으로 구성한 작업이 함께 전시된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은 재개발과는 무관하다. 나의 작업은 재개발 지역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의 기준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이주를 겪고 있었던 경험이였다. 그들의 이야기 가운데 당연히 나의 이야기도 있다. 작업을 하는 동안 나의 사적 기억과 그들의 이야기들 가운데 공통 분모를 찾아내었고, 그걸 형상화하자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아직 다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이 작업들은 전시가 끝나고 난 뒤에서 계속 진행 될 것이다. 사진이든 나레이션이든 형식이야 어땠든 끝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전시를 통해 구체화되어 사람들에게 다가서길 바라고 그것이 또 다른 반응으로 드러났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