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ces there but not always exist

by LEE MINKyung

I had quite a lot of time alone when I was a child.

It was only three or four hours a day, not every day, but as a kid I felt the time as eternity. I used to lay on the floor with my face, watching for a long time that the shadows made by the sun, or the sunlight, would move. I took out my blankets occasionally and looked at the small floral patterns drawn on the futon, and imagined walking among the flower trees in a foreign country as I made some stories from the imagination to play. When a little girl who dreamed of a nomad traveled a long time in her head, the word "nomad" is interpreted to a word for spiritual, journey of soul, not just a word about the state of physical migration. Anyway, the interest and obsession about the space that have been going on for a long time since I started working on art seems to have begun from such a childhood from the house where no one was around.


I presume human space is connected with human life.

I work on art with the gaze of human beings at space, the human being changing in space, and the human life likened to space. Recently, the space where the narrative of human life is contained is interesting. For me, the form of space and the impression that is imprinted are also important, and at the same time, the story of human life beyond the landscape of the space also signify. According to the narratives that people create, the spaces they meet in their daily lives are remembered with their different impression. So I try harder to remember the impression of the space than to reproduce it as original. As a result of these efforts, the space models are created and left as photographs, and the objects are involved in spatial scenes. The objets have many meanings, but the important role is to reveal a part of the story in the space. In the exhibition, the installation is also used as a way to realize the impression, not a story about any specific landscape. I expect to spread the symbol of the surrounding spaces which become a catalyst for the space in viewer's mind.


In a passage of the Bible that I first read in my twenties, God promises 'a better county'. It is said that the people who have continued their journey for a long time do not return to their former place and miss God's promised "better home". And they confessed. It is not just about the destination in real world.

I wonder the longing for the place they had not been would have cast a light of expectation in the place they faced each day, and would have made them feel the illusion of the far promised place. I guess maybe Heterotopia, which Foucault said, is about a willful effort for a human being to achieve his desire for a distant other space in reality, in this present place. I murmur my thoughts through this show.



거기에 있지만 항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들에 대해


어릴 때 혼자 있는 시간이 꽤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고작 서너시간 이였겠지만 꼬맹이였던지라 그 시간을 영원과 같은 길이로 느끼곤 했습니다.

얼굴을 대고 바닥에 누워, 햇볕을, 혹은 햇빛이 만든 그림자들이 자리를 옮기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간간히 이불을 꺼내 이불에 그려진 작디작은 꽃무늬를 바라보며 어느 외국나라에서 들판에 선 꽃나무들 사이를 거니는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만들고 놀기도 했습니다. 노마드Nomad을 꿈꾸던 한 작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긴 여행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노마드는 물리적 이주를 거듭하는 상태에 관한 단어가 아니라 정신적인, 영혼의 여행에 대한 단어가 아닐까 나름 해석해봅니다.

여하튼 작업을 시작하며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아집은 그러한 어린 시절을 시간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시간을 보내던 집, 집안의 풍경,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만들며 놀았던 기억으로부터 말입니다.


저는 인간의 공간을 인간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합니다.

인간이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공간 안에서 변화하는 인간, 공간에 비유한 인간 삶 등을 작업합니다. 저에게는 공간의 형태와 각인되는 인상도 중요하고, 동시에 그 공간의 풍경 너머 인간 삶의 이야기도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좀 더 인간 삶의 서사가 담겨진 공간에 관심이 갑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따라 일상에서 만나는 공간들이 다른 얼굴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간을 원래대로 재현해 내기보다 공간의 인상을 기억해내는데 더 애를 씁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방법적으로는 공간모형을 만들어 이미지로 남기고, 또 다른 작업에서는 오브제도 공간 풍경가운데 개입시킵니다. 오브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래도 중요한 역할은 공간 가운데 담긴 이야기의 한 부분을 드러내는데 쓰이고, 전시에서는 풍경의 인상을 재현해 내는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풍경은 어떤 특정 풍경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맴도는 공간들에 대한 상징을 펼쳐놓으며, 마음속 공간에 대한 촉매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20대에 처음 읽었던 성경의 한 구절 속에서 신은 ‘a better country'를 약속합니다. 오래 동안 끝나지 않는 여행을 계속해 온 민족이 이전의 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신이 약속한 ’더 나은 본향‘을 그리워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그 곳은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이라고요. 가보지 않은 곳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매일 대면하는 장소에서 기대의 빛을 드리우며 그 먼 곳의 환영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푸코가 말했던 헤테로토피아도 먼 곳에 대한 갈망을 무지한 인간이 현실에서, 현재의 이 곳에서 이루고자 한 의지적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저에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2018.11. 이 민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