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글이었으면

전시연계 비평: 민경

[삼중점: 국동완, 민경, 이민하]

2021.6.1-6.7 송도 더 제니스 128호

 

 

안소연

미술비평가

 

 

이 사진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그녀의 사진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찍은 또 다른 사진이 화면의 소실점을 만들며 한 가운데 걸려 있다. 사진 안에 있는 사진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사진의 바깥, 동시에 이 사진의 문턱 너머에는, 숨어 있는 한 사람의 웅크린 발이 보인다. 웅크린 몸은 보이지 않지만, 두 발은 웅크린 누군가의 몸을 가리킨다. 사진의 제목은 <나쁜 꿈(악어)>(2018)인데, 사진 속에는 가짜 악어가 불안을 키운다.

 

두번째 사진은 무언가를 드러내려 한다. 탁자 위에는 두 개의 찻잔이 희미한 직각을 이루며 놓여 있어, 오른손 잡이의 어떤 몸을 기억하게 한다. 아무도 없는 소파에 펼친 채로 엎어 놓은 시집의 겉 표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정오의 희망곡』, 벽과 탁자 사이에 벽을 등지고 앉은 이의 몸이 12시를 가리킨다.

 

⟪삼중점⟫에서 내가 본 민경의 사진 두 점은, 그 내부에 뭔가를 잔뜩 집어 넣은 것처럼 꽉 찬 공기의 밀도를 느끼게 했다. 그것은 창문을 닫아 놓은 작은 방에 두 사람이 침묵 속에서 마주 앉은 것처럼 들숨을 다시 내뱉지 못하는 서로의 긴장감을 전해준다.

 

사진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잔해들처럼, 민경의 사진 곁에는 어떤 글과 어떤 오브제가 부유하듯 함께 있곤 했다. 삼 년 전에 제작한 사진 작업들 중에서 이 둘을 따로 빼서 보여주기로 한 민경은, 사진의 잔해 같은 글을 빈 벽에 가져다 놓았다. 언어가 만들어낸 그 글은, 시처럼 생겼으나 기교를 뺀 산문 같고, 소설처럼 사건을 가졌으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독백 같다.

 

파헤쳐진 붉은 땅과 아무렇게 자라난 야생 식물이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게 그냥 눈 앞에 드러나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찍힌 사진이 빈 벽마다 즐비했고, 어떤 나무 질감의 오브제가 허공에 높이 매달려 있던, 그 전시를 나는 본 적 있다. 둥글게 굽은 나무 질감의 오브제 밑으로 붉은 흙 산의 형태를 도자로 작게 빚은 모형 두 개가 수직적인 받침대 위에 세워 있었고, 그 전시의 제목은 ⟪그녀와 나의 포물선⟫이라 했다. 여러 장의 사진이 있었고, 그들의 잔해인 것처럼, 난파된 오브제들이 누군가의 목소리에 휩싸여 각각 한 장소에 부유하고 있었다.

 

그녀는 장소에 대해서 말했다. 사진 속 또 다른 사진의 (숨겨진) 공간처럼, 벽과 탁자와 소파가 사진 안에서 수평적으로 얕은 공간을 만들어낼 때 찻잔 앞의 빈자리나 소파 위에 펼쳐있는 책의 사선 구조가 암시하는 보이지 않는 공간의 현존처럼, 민경은 현실 안에 있는 다른 장소에 대해 생각했다. 파헤쳐진 붉은 땅, 남겨진 영토에서 불쑥불쑥 자라난 잡풀들, 허공을 향해 굉음을 내뱉으며 올라가는 콘크리트 건물들을 우회하여 흐르고 있는 구름과 식물의 뿌리와 젖은 땅과 바람 같은 것, 그런 것들이 하나의 원근법적 소실점 속으로 영영 사라지지 않고 포물선을 그리며 독백 같은 소리를 낸다.

 

왜 사진이었을까 했는데, 그녀가 기록한 선명한 풍경은 (뜻밖에도) 초점이 흩어져 있어서 사진으로 사진 아닌 것에 다가가려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사진 안에 고정시켜 둔 풍경은, 현실의 거대한 서사를 방해하며 읽을 수 없는 분절된 소리를 낭독한다. 그것을 그녀는 “이주”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녀는 이주의 언어를 쓰고 말한다. 그것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몸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번역하는 급진적인 언어이며, (가짜) 원근법적 소실점을 공허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꿈의 언어이며, (죽은) 신화적 상징에서 벗어나 (유령같은) 메아리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려내는 수행적인 언어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사진, 무언가를 드러내려 하는 사진, 시 같고 산문 같고 소설 같고 독백 같은 글, 난파된 오브제, 민경의 작업은 차라리 글이었으면 하는 누군가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읽을 수 없는 낱개의 언어들을 얹어 놓을 지지체로서 일련의 것들을 힘써 매만진다.

 

나는 그녀에게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의 일부를 떼어 보내는 것으로 이 짧은 글에 마음을 실어 마치려 한다.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 단어들이 목적이다. / 단어들이 지도이다. /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 그럼에도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 왔다. / 난 손전등에 불을 켜 비춰본다. / 물고기나 해초보다 / 더 영원한 어떤 것의 / 측면을 따라 천천히

 

내가 찾으러 왔던 것. / 그것은 잔해 그 자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 그 자체일 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