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가족 Unfamiliar Family
징조적 낯섦
정상희(ADO 크리에이션 대표, 기획, 번역)
속이 비어 있는 구조물들이 낮은 나무 좌대에 얹혀져 전시장 일부 공간을 채우고 있다. 민경이 ‘관계 조각’이라 부르는 이 오브제는 유기체적 비정형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 표면 위에는 가족과 일상의 모습을 기록한 무채색의 사진들이 포토 몽타주 기법으로 조각조각 붙여져 있다. 가족 초상 연작 오브제이다. 전시장 벽에 걸린 사진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렇게 만들어진 입체 오브제를 머리에 쓰고 있다. 낯설다.
사진 속 공간은 작가의 집이고 오브제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들은 작가와 작가의 가족들이다. 그들이 앉아 있는 배경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방, 거실의 보통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순간 고르지 못한 긴장된 숨을 쉬게 된다. 작가의 일상이 이뤄지는 익숙한 공간과 그 안을 채우는 일상의 존재들이 낯설게 보이도록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서 머리에 쓴 오브제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일종의 불안함을 주는 낯선 존재가 된다.
‘낯설다’라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모험과 같은 설레는 삶의 현장과 연관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안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순간이나 느낌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낯섦은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불시에 평화와 평안을 깰 수 있는 불안과 두려움의 시작일 수도 있다. 낯섦은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서 시각적으로나 여러 감각과 경험을 기반으로 축적된 인지적 영역에서나 말 그대로 익숙함을 벗어나는 순간 작동되곤 한다. 이는 예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시작된 낯섦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될 수도 있고 때로는 아주 짧은 순간에 다시 낯섦 자체가 익숙함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민경의 사진 속 오브제를 쓰고 앉아 있는 인물들이 낯설게 보이는 순간 거의 동시에 다시 익숙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민경은 사진 연작에 대해 인물과 공간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징조적 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집안을 채우는 가족 구성원들의 낱낱의 감정과 순간이 서로 얽히고 연결되는 지점이 확장되고 축소되며 그리고 때로는 왜곡되고 변형되며 발생하는 크고 작은 내적 드라마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불길한 일이나 변화의 징후를 나타내는 의미의 “징조”는 “낯섦”과 같이 심리적으로는 불안이나 두려움의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인간의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가장 안정적이며 익숙한 순간들로 맞이하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징조는 불길한 일이나 변화의 징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경험과 놀라움에 대한 일종의 기대와 미적 경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경의 작품에서 드러내는 “낯섦”은 “징조”의 의미와 맞닿아 있다. 예술가의 삶과 엄마의 삶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 하는 현실 안에서 예측할 수 있는 순간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영상 <그림자 노동>에서도 드러나듯이, 모든 영역의 하나 하나의 삶이 도착지를 알 수 없고 언제 끝날지 모를 때 경험할 수 밖에 없는 불확실함에서 오는 징조적 낯섦이 민경의 작품에 가득 채워져 있다. 장소 안에서는 자아와 타자, 익숙함과 낯섦, 명확함과 모호함, 주관성과 객관성, 시간과 공간 등의 다양한 이중적 요소를 포함하는 단일한 구조가 자리하며 그 역할을 한다. 우리는 쉽게 장소 안에서 수많은 순간들을 경험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경험들이 장소에 속해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장소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을 장소 안에 두는 방식으로 장소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하다. 장소는 존재와 세계 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단순한 물리적 위치나 좌표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는 장소 안에는 존재와 세계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결과적으로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세계만이 등장하는 장소의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 징조적 불안함을 유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민경은 다양한 순간의 작가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사진의 배경에 또 다른 사진 작품이 걸려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 작품 속 작품은 특정 공간의 실재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미니어처를 다시 사진으로 찍은 작품들이다. 사진 속 일상의 장소를 낯설게 하는 장치로서 그 안의 구성원인 가족의 정체를 오브제로 숨김으로써 일시적으로 장소 안에 존재는 없고 세계만 남겨둠으로써 만들어 낸 징조적 낯섦은 벽에 걸린 작품 속 작품의 존재 없이 세계만 담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더욱 불안하고 불길한 징조적 낯섦이 된다.
민경은 세계와 존재 간의 관계를 부분 단절시킴으로써 자신이 삶에서 문득 느끼는 징조적 낯섦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민경의 징조적 낯섦은 불길한 불안함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듯한 설렘과 긴장감이 가득한 미지의 경험과 놀라움의 순간들이기도 할 것이다.






전시 <Unfamiliar family: 낯선 가족>에서 나는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던 인간 공간에 대한 관심을 일상 사적 공간으로 집중하여 구성하였다.
사진 시리즈 ‘낯선 Unfamiliar’과 영상 ‘그림자 노동 The shadow work’, 그리고 입체 오브제 ‘관계 조각 The objects of relationship’, 세 작업군으로 전시를 엮었다. 시리즈 ‘낯선Unfamiliar’는 구성 사진의 맥락과 맞닿은 가운데 인물(입체 오브제로 얼굴을 가린), 공간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징조적 서사’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작업의 배경이 되는 집은 피부처럼 매일 맞닿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온갖 가족 구성원들의 내적 드라마가 일어나는 곳이다. 가족이라고 하는 각기 다른 타인들이 공간을 점유한 일시적 순간들과 수행하는 행위들이 마치 연극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는 나 역시 하루에도 수십번 여러 역할을 오가는 긴 일상 연극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먼저 언급한 ‘징조적 서사'란 사적공간이 의미하는 일상성과 인물이 경험하는 감정적 드라마, 수행해야 하는 제스처가 부딪히며 창출된다.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기 보다는 사소한 상태가 발생하는 순간이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찰나, 그러한 찰나들로 이어진 하루, 나에게 있어 이 사진 작업은 이러한 일상성이 드러나는 방과 같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대해 앙리 르페브르의 책에서 번역가 박정자는 말한다. 일상성이란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치 않은, 보잘 것 없는 것들의 이어짐일 수 있음을 말이다. 매일 같은 사람들과의 돌고 도는 관계성, 반복적이고 지루한 잡무, 좌절된 욕구와 반복되는 무기력, 막연한 미래를 향하는 평이한 현재의 하루 같은 것이 일상성의 비참함이다. 그러나 이런 일상에 비참함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일상이 쌓이는 반복된 하루 가운데 아이들은 하나의 생으로 자라기도 하고 쌓인 루틴으로 만들어진 작업은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그 일상의 완강한 지속성 아래 삶은 서사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일상의 삶이 깃든 공간은 삶을 꾸려가는 작은 무대, 끊임없이 옮겨다녀야 하는 직육면체 상자와 같은 시공간,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의 징조를 담은 장소를 상징하고 있다.
이반 일리치의 동명의 저서에서 그 이름을 빌려 온 영상 ‘그림자 노동 The shadow work’은 이러한 일상성과 숨겨진 일상의 노동, 그 행위를 드러내고 있다.나는 같은 크기의 삼각형 우드락을 반복하여 겹쳐 형태를 잡고 얇은 한지를 겹쳐 발라 오브제의 형태를 잡는다. 이후 오브제의 표면에 가족의 여러 얼굴과 일상 사물의 이미지를 포토 몽타주와 드로잉으로 얹어 완성한다. 얼굴은 나와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것이다. 한 표면 위에 섞인 얼굴들은 서로 맞붙이는 동안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나는 이러한 탈 형태의 오브제가 신체와 접속하는 하나의 장소로 역할 하길 기대한다. 이 장소 안에서 인물은 1/125초(조명을 사용할 때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의 일상 연기를 해내야 했다. 탈은 쓰는 이들은 나와 가족이다. 내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그들 자신을 연기하도록 하는 것인지, 혹은 그들이 행하는 여러 역할 중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인지는 역시 명확하지 않다. 그저 셔터를 누르는 동안은 매일 반복되는 하루와 그 순간들을 견뎌내는 그/그녀가 있을 뿐이고, 그 순간 만큼은 그들의 찰나 속 내면의 미시적 드라마가 담기길 바랄 뿐이다.
23.10. 작가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