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물, 사이, 앉아》 

서문/고윤정

사공토크 기획의 《꿈, 물, 사이, 앉아》는 김성미, 김수진, 민 경, 정혜령의 4인전이다. 사공토크는 2019년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작가단체이며, 현재는 김성미, 김수진 2인 체제로 활동중이다. 사적인 영역의 실천들을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내보자고 시작한 사공토크는 <무형의 레지던시>, 토크, 전시 등을 계획하며 여성 예술가들의 미술계 내에서 자리잡기에 대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꿈, 물, 사이, 앉아》는 2명의 예술가 민 경, 정혜령을 초청하여 9번에 걸친 장기간의 세미나 끝에 이루어진 전시이다. 다소 쉽지 않은 텍스트인 클라리스 에스테스(Clarissa Estés)의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이라는 책을 읽고 고백과 사유,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여성 중심의 미술은 사실 매우 역사가 길고 담론의 가지가 다양하다. 사회적 불평등, 미술계 내에서의 불평등으로 출발했던 페미니즘 예술가들은 주로 미술에서 여성의 위치는 재현의 대상이었거나 여성을 시각적인 즐거움을 담당하는 역할로 묘사되어 온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초기의 주장이었다면, 사회투쟁에서부터, 본질적인 여성성을 되찾거나 여성을 넘어선 소수인종, 젠더의 사회학으로 넘어서 지속적으로 시대의 변화에 맞는 이슈들이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이전 세대에 비하여 점차 여성주의 미술은 실천적이고 투쟁적이며, 정체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개별적인 프로젝트를 통하여 여성주의 예술의 이슈를 드러내며, 서사적인 흐름보다는 개인의 목소리가 현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연심, 「2세대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 미술 비평」,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26. 2013, p.175]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의 지형도는 전시기획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1999년의 <여성미술제 99: 팥쥐들의 행진>을 비롯해서 타자, 비주류 담론을 예술계 중심으로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포용의 역할을 하는 기획도 등장하였다. 또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도 여전히 유효하였기에 여성미술인들 각각이 생각하는 금기를 깨는 시도들이 꾸준히 있었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성정체성을 아우르는 예술작품과 전시는 이전보다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페미’라는 단어에서 오는 거부감은 페미니즘을 혐오의 중심에 서게 하였다. 본질적인 여성성을 찾고자 했던 과거의 질문들이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한쪽에서는 미술계의 성폭력 이슈가 권력이 있는 남성과 예술계의 진입 단계의 여성 작가 지망생들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있고, 한쪽에서는 성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보다 많은 타자를 등장시키는 전시가 성행하고 있다. 그간의 예술계가 겪어 왔던 크고 작은 담론들이 한 시대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아래에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1992년 무렵 미국에서 출판된 책으로, 숨겨져 있던 욕망과 금기와 억압에 대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심리학적 분석을 기반한 책이다. 건강한 늑대와 여성은 예민하고, 장난스럽고, 강한 희생정신을 지니고 있고, 호기심이 강하며, 힘과 지구력이 있고, 자식과 배우자, 가족을 끔찍이 아끼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을 잘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비롯한 지배 구조의 영향으로 마녀재판, 마녀사냥 등으로 무수한 세기에 걸쳐 학살되어왔고, 책에서는 그간에 숨겨 왔던 야성의 힘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보이려고 하고 있다. 다소 극단적인 설정이 등장하여 다이나믹한 과정을 보이고 있지만, 잊고 있던 내면을 성찰하고 본능을 발굴할 것을 독촉한다.

사공토크와 민 경, 정혜령 작가의 봄부터 진행된 9번의 시간 동안에 작가들은 여성의 위치를 불평하거나 대립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잃어버린 언어들을 찾는데 주목하였다. 예를 들어 김수진 작가는 나와 ‘연관’이 있는 이야기 때문에 이 내용이 진실되고 몰입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민 경 작가는 남성 중심 사회로부터의 제약이 실은 스스로 ‘내면의 제약’이 아니었을지 생각해보았다고 한다. 김성미 작가가 자아를 찾는 과정을 ‘부드러운 표현 방법’이자 ‘재료’에서 찾으려고 했다면, 정혜령 작가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지난 작업을 되돌아보고 고난과 극복이 반복되는 체험을 통해서 ‘씻김’의 경험을 하였다.

이번 전시의 준비 과정은 개인적인 각자의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는 경험을 겪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이 겪어 왔던 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에 딱지가 져서 기억이 나지 않는 희미한 과거들과 본능에 의지했던 작업에 대한 욕구와 개인의 상처들이 뒤섞이면서 자신의 상황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여러 가지 문제를 공유할 수 있는 작은 공론의 장이 9번의 세미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한편으로는 ‘여성’ 예술가로서, 한편으로는 여성 ‘예술가로서’ 자꾸만 자신의 정체성을 이리저리 추를 기울이듯 스스로를 규정해가는 것은 ‘털실’이나 ‘철사’처럼 사소한 설정에서부터 예술가들을 고뇌하게 한다.

 

<당신의 밤에 무엇이 많은가>

민 경 작가 노트 

 

작업은 아이와 내가 동시에 나쁜 꿈을 꾼 밤으로부터 출발한다. 깊고 깊은 밤 나는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꿈을 꿨다. 기묘하고 불안한 꿈이었다. 꿈에서 깬 후, 꿈이 말하고 있는 것을 헤아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내 옆에서 잠들었던 아이 역시 악몽 가운데 흐느끼고 있었다. 아이와 나에게 동시에 드리운 나쁜 꿈의 그림자는 크고 깊었다. 아이를 달래려, 아니 실은 나 자신을 위로하려 천사를 소환하는 기도를 하였다. 어둠이 지배하는 깊은 밤, 그 무엇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길고 거대한 날개를 가진 대천사를 부르며 아늑한 잠자리를 지켰다.

이 전시를 꾸리며 세 명의 여성 작가와 20년 전 출판된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을 함께 보았다. 이 책은 신화, 전설, 동화에 담긴 의미를 (무의식의 상징언어를 분석하는) 융의 원형 심리학과 여성 지향적 관점에서 해석해내고 있다. 이 독특한 책을 매개로 그녀들과 봄부터 만났다. 어떤 날은 잠식한 전염병에도 조심스레 얼굴을 볼 수 있었고, 다른 날은 노트북 스크린을 통해 마주했다. 책을 디딤돌 삼아 가부장제, 여성성, 여성 신체, 미투 운동, 여성의 섹스, 가족 관계 내 역할 문제 등, 여성으로 살아가며 만나는 포괄적인 이야기들을 사적이고 은밀한 수위로 나누었다. 정답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해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덩어리처럼 보이던 그것들을 알알이 헤쳐 해석하고 이해하려 애를 썼다. 그러다 모임 말미에 아이와 내가 겪었던 그 밤의 악몽이 생각이 났다. 상징언어의 거울로 비춰보니, 꿈속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나였으며 불안에 잠식당하는 것도, 불안을 종식하는 것도 결국은 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 ‘당신의 밤에 무엇이 많은가’는 나쁜 꿈을 형상화한다. ‘나’를 주어로 기술된 이야기 네 편과 사진 네 점이 하나의 작업이다. 사진 속 인물 탈 형태의 오브제를 쓰고 네 개의 얼굴을 보여준다. 얼굴을 감추고 있지만, 사실은 또 다른 자신의 내면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서로 이어지는 꿈 이야기는 책 형태로 묶였다. 글과 이미지는 다른 속도로 읽히게 될 것이지만 모두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불행을 길어내어 본연의 자신을 발견하는 한 여성을 그려내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자신의 다양한 얼굴을 스스로 끄집어내고 내면에 숨겨진 ‘wild woman’을 발견하는 여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