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상황주의자의 미술제도 바라보기>
윤동희
인천아트플랫폼의 적절한 프로그램 덕분에 작가 이민경의 작업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이민경은 ‘공간’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소재상으로 보자면 자신의 삶에 밀착한 공간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고, 욕망과 삶, 권력 등의 흔적이 어떤 식으로든지 거기에 관여되어 있다. 인간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 각각의 공간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물들의 앙가주망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탐색하고(이방의 집), 낯설고 이질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To The Desert), 미술관의 비어 있는 공간을 사진으로 담아 예술을 둘러싼 ‘권력’의 문제를 소환해낸다(하얀 벽).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세 명의 작가와 함께 가진 <ShowRoom 전시장>전에서 이민경은 작품의 종착지로 여겨지는 ‘전시 공간’을 작업의 ‘과정’으로 끌어들였다. 작가는 (사립)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전시 공간을 관객의 입장으로 촬영하고, 이를 미니어처로 제작하고, 다시 촬영했다. 1970년대 작가 지나 판(Gina Pane)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칼로 긋거나 고문함으로써 ‘상처’를 통해 ‘신체의 기억’을 되살렸듯이, 응당 작품이 있어야 할 전시장에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순간을 담음으로써 화이트 큐브로 불리는 미술관의 본래적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본래 진실은 역설을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이민경의 작업이 단순히 공간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공간’은 미술이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자신만의 개념의 준거를 위해 텍스트 바깥의 세계를 집요하게 탐구해 일상의 경험과 전통적인 학술적 관심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했던 발터 벤야민처럼 작가는 공간에 얽힌 우리의 고정관념을 허묾으로써 해당 공간의 본래의 속성을 증명하는 미학적 사유방식을 발전시켰다. 그런 점에서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하얀 벽’의 전시장을 촬영-미니어처-재촬영의 삼단 논법적 알레고리로 풀어내는 이민경의 작업은 봄(seeing)과 앎(knowing)의 변증법으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벤야민이 증명했던 것처럼, 알레고리란 진리를 이해하는 특수한 예술 형식일 테니 말이다.
이민경의 작업은 1970년대 서구 미술계의 한 지점을 점유했던 ‘상황미학(Situational Aesthetics)’을 연상시킨다. 미술사학자 브랜드 테일러는 저서 『오늘의 미술(The Art of Today)』에서 박물관이나 화랑을 물리적 자원으로 선택하여 미술이 제작, 전시, 상품화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자 했던 마이클 애셔의 작업을 상기시킨다. 애셔는 1974년 로스앤젤레스 클레어 코플리 화랑의 전시 공간과 사무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벽을 없애고 작품을 철수시킴으로써 미적 경험과 상업성 사이의 경계를 무화시켰다. 전시 공간이 갖고 있는 물질적인 특성을 조정하는 해체(deconstruction)를 통해 미술관이라는 추상적 공간성을 구체적으로 증명해보인 것이다. 다만 기존 문화를 전복시키고 생소하게 만들려는 상황주의적 시도와 달리 이민경의 작업은 도시를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미술 공간을 직접 ‘통과’하고 ‘표류’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현실적, 예술적 상황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는다는 점에서 벤야민의 ‘산책자’ 개념과 이어진다. 1980년대 후반 다니엘 뷔렝이 미술의 탈정치화에 맞서 미술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양감을 부여했듯이 이민경의 작업은 이 비엔날레에서 저 비엔날레로, 이 레지던시에서 저 레지던시로 무수히 이동해야 인정받는 오늘날 작가를 둘러싼 예술적 상황을 아로새겨 보여준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중제) ‘공간’ 에피소드의 계열성과 프로덕션화를 기대하며
이민경의 미니멀리즘적이면서도 개념적인 작업은 회화와 사진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 리히터의 관습에서 벗어난 회화와도 연동된다. 비록 방식과 양식은 다르지만, 회화의 한계와 극단을 실험한 리히터의 그림이 이데올로기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아방가르드의 경지에 올랐던 것처럼, 이민경의 ‘공간 사진’은 예술을 예술이게 만드는 전통을 완강히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예술가를 장악한 미술공간의 ‘권력성’을 흩뜨려놓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민경의 작업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사진과 중간 지점을 경유하는 미니어처가 갖는 관계성도 흥미롭다. 본래 사진은 실재와의 연결성을 생명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민경의 작품에서 사진은 특정 공간의 실재를 모사한 미니어처라는 허구적인 대상을 담아 일종의 ‘중성적 성격(in-between-ness)’을 띈다. 마치 셰리 레빈이 워커 에번스, 엘리엇 포터 등 남성작가들의 유명한 작품의 재촬영을 통해 미술의 탈남성화를 꾀했듯이, 이민경은 작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리하여 작가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미술관의 탈권력화를 추구하기 위해 (재)촬영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 사이에 미니어처라는 오브제를 끼워 넣었다. 분명한 건 어떤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용된 기법과 재료가 아니라 작가의 ‘입장’일 터. 이민경의 공간은 미술관의 예술적 가치, 즉 의미는 작가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사용가치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생각을 좌표의 왼쪽으로 이동시키지 않더라도, 오늘날 미술계의 제도적 운용은 예술작품이 작가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사용가치라는 최초의 의미를 소외시키고 있다. 이민경은 이 소외된 사물로서의 예술 작품에 작가의 소망과 불안이라는 의도를 가미함으로써(아도르노가 그랬듯이) 작품의 고유의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알다시피 공간은 자아정체성을 규정하는 주요한 통로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지금의 내가 어디를 거쳐 왔는지가 나를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대구에서 자라 미국에서 공부하고, 인천에서 레지던스 활동을 하는 등 이민경의 삶의 동선은 공간이 예술가의 삶의 부분을 넘어 전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가 신뢰할 만한 많은 작품들이 시간과 공간의 통섭을 통해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다루어왔다는 점에서 이민경의 선택은 잘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 세계적인 이주와 유목의 시대를 맞아 공간의 개념이 물질적, 관념적으로 수정과 변형을 거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가 다루는 공간의 범위 또한 전지구적으로 확장되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삶을 둘러싼 실존주의적 공간과 욕망과 권력이 뒤엉킨 미술제도의 공간을 넘어 리얼(real)이 없는 하이퍼리얼 속 공간에 대한 논의도 기대해본다. 이미 창조물과 모사물 사이의 ‘차이’를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시각언어로 박음질하는 법을 알고 있는 작가이기에 염치없는 부탁은 아닐 터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생전에 ‘자리매김’이란 말이 싫다고 했다. 한 번 자리가 맺어지면 변경하기 힘든 고착적인 느낌을 못 마땅해했다. 하지만 작금의 미술계는 한 번의 공모전, 한 번의 레지던스 참여로 자리매김하려는 작가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작가라면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불안감에서 해방되려 하는 그 마음은 이해되지만, 변화가 따르지 않는 자리매김으로 미술계의 ‘제도’를 사용하려는 건 옳지 않다. 작가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스스로를 향한 믿음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직관을 언어와 이미지로 옮길 때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민경이 지금까지 보여준 일련의 ‘공간’ 에피소드가 이제 시작이라고 여기고 싶다. 다행히 그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공간’이라는 자신만의 계열성(seriality)을 확보했다. 단순히 하나의 방식에 의존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프로덕션’으로 연출할 수 있는 단서도 곳곳에 보인다. 이민경이 자기 작업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척도로 자부할 만한 작업을 성취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윤동희 | 영상 커뮤니케이션, 북노마드 대표
* 윤동희는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월간미술> 기자, 안그라픽스 편집장, 광주비엔날레 학술지 <눈(noon)> 편집위원을 지냈다. 현재 도서출판 북노마드 대표다. 동덕여대 대학원, 서울대 대학원, 세종대, 인천 가톨릭대, 성신여대, 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
Looking into Art System by a Situationist
YOON Donghee (Image Communication, representative of Book Nomad)
I appreciated interestingly the work by artist LEE Minkyung, thanks to the proper program of Incheon Art Platform. LEE Minkyung is an artist looking into the ‘space’. In an aspect of motif, the space adhered closely to her life goes all the way across the work, and the traces of desire, life and power, etc. are engaged in it in a way. She investigates human ‘desire’ through the engagement of each space forming a man's identity and of the objects filling it, in <Alien House>, and she talks of ‘life’ through a space where she reflects upon her, in an unfamiliar, strange situation, in <To The Desert>, and she brings up an issue of the ‘power’ surrounding art through the photos of the empty space of a museum, in <White Wall>.
In the exhibition of 《Show·Room》(2011) shown with 3 artists, held at Incheon Art Platform, LEE Minkyung brought an ‘exhibit space’, considered as the end of work, into the ‘process’ of work. The artist went about the (private) museums, photographing exhibit spaces from a spectator's angle, producing them in miniature and photographing them again. Like that Gina Pane, one of the artists in the 1970s, called back ‘the memory of body’ through the ‘wound’ by scratching or torturing a part of her body by knife, she revealed the original attribute of the museum called a white cube by photographing the moment when nothing exists in an exhibit hall where works of art are supposed to be. The truth is, essentially, revealed through paradox.
LEE Minkyung's work doesn't just talk about the space. Her ‘space’ is directly related to the realistic, urgent issue of art. Like Valter Benjamin who has attempted to overcome the gap between a daily experience and a traditional academic interest, to give his authority for his own concept, by investigating the world outside the text tenaciously, the artist has developed the aesthetic thinking method of demonstrating the original attribute of a space by breaking down our fixed idea of space. From that point, LEE Minkyung's work, in which she clears up the meaning of the exhibit hall with a ‘white wall’ where arts of work don't exist through the allegory of a syllogism (photographing-miniature-rephotographing), could be called the dialectic of seeing and knowing. It's because, like that Valter Benjamin proved it, allegory is a specific form of art by which we understand the truth.
LEE Minkyung's work reminds us of the ‘Situational Aesthetics’ which occupied a site of Western art scene in the 1970s. Brand Taylor, art historian, reminds us, in his book 『The Art of Today)』, of the work by Michael Asher who chose a museum or a gallery as physical resources, looking through the general process of producing, exhibiting and commodifying art once again. Michael Asher removed the boundary between aesthetic experience and commercialization, in 1974, by removing the wall between the exhibit space and the office space of Claire Copley Gallery, Los Angeles and by withdrawing arts of work. He concretely proved the abstract properties of space, a museum through the deconstruction to regulate the physical characteristic of an exhibit space. But, unlike the situationist attempt to overthrow an established culture and to make it unfamiliar, LEE Minkyung's work having an open attitude toward the realistic, artistic situation surrounding her, by directly ‘passing through’ the art space which makes a city beautiful, meaningful and by ‘being adrift’, is connected with Benjamin's concept of ‘walker’. Like, standing against post-politicization of art, that Daniel Burren gave a new viewpoint and voluminous quality to art space in the late 1980s, LEE Minkyung's work reveals the artistic situation surrounding contemporary artists who have to move from biennale to biennale, and from residency to residency to be recognized.
In expectation of systemizing and productionizing episodes of ‘space’
LEE Minkyung's minimalist, conceptual work is also linked to Richter's unconventional painting placed at some point between painting and photography. Though their methods and styles are different, LEE Minkyung's ‘space photography’ bore fruitful results of scattering the ‘nature of authority’ of the art space occupying contemporary artists, without tenaciously refusing the tradition to make a work of art an art, like that Richter's painting experimenting the limit and the extremity of painting attained the state of avant-garde without advocating any ideolog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hotography forming the beginning and the end and the miniature passing through the middle point of LEE Minkyung's work is also interesting. Essentially, the most important part of photography is connectivity to actuality. But in LEE Minkyung's work, photography, capturing the fictitious object, a miniature copying the actuality of a specific space, has a sort of ‘in-between-ness’. Like that Sherrie Levine strove for de-virilism of art through rephotographing the famous works by the male artists including Walker Evans and Eliot Porter, LEE Minkyung chose a method of photographing and rephotographing and inserted an objet, a miniature between them to pursue de-authoritarization of a museum from which artists are inseparable. Surely, the important thing is, in a work of art, not used techniques and materials but an artist's ‘viewpoint’. LEE Minkyung' space verifies that the artistic value or the meaning of a museum is the utility value produced by an artist's labour. The systematic operation of contemporary art scene neglects the primary meaning that an work of art is the utility value produced by an artist's labour. By adding an artist's intentions, hope and anxiety, to a work of art as a neglected thing (like that Adorno did it), LEE Minkyung emphasizes the proper meaning and value of a work.
As you know, space is a major way to define self-identity. At a present point in time, ‘where’ I am and where I've passed by tell about who I am. From that point, having grown up in Daegu, having studied in America, doing residence activity in Incheon, LEE Minkyung's life line of flow shows that space can be the whole beyond parts of an artist's life. In the point that many reliable works of art have dealt with the identities of ‘I, you and we’ through a consilience between time and space, LEE Minkyung' seems to have make a good choice. But, in the point that the concept of space is being modified, transformed physically, abstractly at the age of global migration and nomad, I hope that the limits of space the artist deals with will be extended globally. I also expect that, beyond an existential space surrounding the artist's life and a space of art system where desire and power are mixed, the artist will argue about a hyper-real space without reality. This expectation would not be impossible because the artist already knows how to backstitch the ‘difference’ between a creature and a copy through a flexible, firm visual language.
KIM Hyun, literary critic, said, while alive, that he didn't like a word of ‘establishing oneself as ...’ He didn't like a feeling of being stuck to an established state, which is difficult to change. But in today's art scene, there are some artists who try to establish themselves as artist through one time of participation to competition exhibition or residence. That they want to be freed from anxiety, which is inevitable as artist, can be understood, but it's wrong that they try to use the ‘system’ of art scene trough establishing themselves as artist, without change followed. They have to remember that artists' most brilliant moment is when they convey the intuition given to them by the trust toward them into language and image. I want to think that a series of ‘space’ episodes LEE Minkyung has shown is beginning. Fortunately, she has secured her own seriality of ‘space’ during a relatively early period. There are some traces to show that she could direct her work as ‘production’, without keeping to rely on a method. So, I think LEE Minkyung would accomplish the work which she could take pride in not only as the core of her work but also as a decisive measure of artistic expression in the near future.
* YOON Donghee(1973~ ) Majored in Image Communication at the Yonsei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Image. After working as reporter at『Monthly Art』, editor in chief at An-Graphics and member of editorial board for『Noon』, journal of Gwangju Biennale, and now works as representative of book publishing Book Nomad. Now, lectures at Dongduk Women University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Graduate School, Sejong University, Incheon Catholic University, Sungshin University, Kyonggi University, etc.